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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家의 유물’ 전시 展 개최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제 31회 특별전
  • 기사등록 2012-06-04 14:48:12
  • 기사수정 2012-06-04 14: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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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은 제 31회 특별전으로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家의 유물’ 전시전을 갖는다. 지난 달 11일 시작한 전시회는 이달 30일까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내 민속복식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덕온공주와 그 후손에 의해 전해져 온 복식류, 생활용품류, 왕실의 편지글 등 총 228점을 전시한다.


오랜 인연을 이어오며 수집한 소중한 유물

덕온공주(1822~1844)는 조선 23대 순조(純祖) 임금의 막내 딸로 왕과 왕비의 혈통을 이어 받은 조선시대 마지막 공주이다. 전시 유물은 단국대 자체 소장 유물로 우리나라 전통복식의 대가인 고(故) 난사(蘭斯) 석주선(1911∼1996)박사가 1950년대 후반 장서각(藏書閣)에서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 여사와 첫 만남을 시작한 이후 오랜 인연을 이어오며 수집한 소중한 유물들이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민속·복식관은 1981년 고 석주선박사가 일생 동안 모은 복식관련 유물 3,365점을 기증받아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으로 시작되었다. 석주선 박사는 복식학계의 1세대 학자로서 우리나라 전통복식의 뿌리를 찾고 보존하는데 앞장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덕온공주와 윤의선

덕온공주(德溫公主1822~1844)는 1822년(순조 22) 6월 10일에 23대 왕 순조(純祖:재세1789~1834, 재위1800~1834)와 순조비 순원왕후(1789~1857) 사이에서 출생했다. 덕온공주가 8세 되던 1829년(순조 29) 3월에 제3공주 ‘덕온’으로 봉작(封爵)됐다.

1834년에 순조가 세상을 떠나 3년 상(喪)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덕온공주는 1837년 늦은 나이인 16세가 되어서야 간택이 거행됐다. 6월 25일 삼간택에서 윤치승(尹致承)의 둘째 아들 남녕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 : 1823~1887)이 부마로 확정된다. 윤의선(혼인당시 이름 윤인갑에서 개명함)은 해평윤씨 집안으로서, 10대조는 선조 임금 때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과 호성공신(護聖功臣) 2등에 책봉되었던 윤두수이며 윤두수의 손자 해승위 윤신지는 선조의 딸인 정혜옹주(貞惠翁主)의 부마였다. 또한 윤의선의 모친의 친정 아버지인 안동김씨 김이상(金履祥)과 대왕대비 김씨의 조부인 김이중(金履中)은 모두 김생해(金生海)의 8대 후손이다. 이와 같이 윤의선은 당시의 국왕인 헌종은 물론 대왕대비 김씨와도 인척관계에 있었던 인물로, 실제로 가문조건을 고려하여 이미 초간택에서 부마 확정 상태였다고 한다. 같은 해 7월 4일 납채(納采)를 시작으로 가례를 거행함으로써 신혼 생활을 시작하였다. 살림집은 저동궁(苧洞宮)에 마련되었으며 신혼살림에 필요한 수많은 물품과 토지가 지급되었다. 덕온공주는 혼례한지 7년 되던 1844년(헌종 10) 5월 24일에 2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날은 헌종의 간택일(계비 명헌왕후)이었는데, 임신한 무거운 몸으로 경사에 참석했다가 급체를 하는 바람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슬하에 자녀가 없었으며, 공주가 세상을 떠나고 수 년이 지난 후 부마 윤의선의 먼 친적인 윤용구(尹用求:1853∼1939)를 양자로 들였다. 윤용구는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는데 첫째가 석주선박사와 오랜 인연을 맺은 윤백영(尹伯榮: 1888~1986)이다.


덕온공주 집안의 유물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초대관장인 고 난사 석주선 박사가 덕온공주 관련 유물을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1950년대 후반 장서각(藏書閣)에서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1888~1986) 여사와 첫 만남을 시작한 인연이 효시(嚆矢)가 됐다.

덕온공주와 관련된 유물은 공주 출합과 혼례 때에 하사 받은 왕실 물품이 상당하며 또한 덕온공주와 윤의선의 혼례로 더욱 가까워진 해평 윤씨 집안과 조선왕실의 인연이 해방 이후까지 지속되어 유물 역시 더욱 다양해지고 풍성함을 보인다.

유물의 종류는 중요민속문화재 5건 45점을 포함한 의복, 소품류, 순원왕후, 명헌왕후, 명성황후의 어필, 고종의 하사품이 있다. 특히 윤용구와 윤백영 부녀가 왕실에서 하사 받은 중요한 유물에 유입 경위를 후손을 위해 기록해 두어 그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석주선기념박물관 덕온관련 소장 유물

덕온공주와 부마 윤의선 유물은 모두 62점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유물 40점(제1호 1점, 제211호 6점, 제212호 33점)과 덕온공주와 윤의선의 의복 및 생활용품 등이 있다.

윤백영과 부군 유용준, 장남, 손자, 시조부, 시조모, 자당, 백부 등 가족들이 사용하였던 수식 의복 장신구 등 29점이 손녀 윤백영과 가족의 유물이다. 왕실의 유물은 중요민속문화제 제213호 항아당의를 비롯한 의복, 화장도구, 옷감조각, 순원왕후(덕온공주의 생모)가 부마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글, 명헌왕후, 명성황후의 어필, 윤황후의 반사물품, 명헌왕후가 사용하고 남은 금선단 옷감 등 44점을 소장하고 있다. 아들 윤용구와 부인 연안김씨 유물16점은 윤용구의 중요민속문화재 제216호 복식 4점과 관모 등의 소품류와 정경부인 연안김씨의 토수 6점이다.왕실의 유물 44점은 중요민속문화제 제213호 항아당의를 비롯한 의복, 화장도구, 옷감조각, 순원왕후(덕온공주의 생모)가 부마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글, 명헌왕후, 명성황후의 어필, 윤황후의 반사물품, 명헌왕후가 사용하고 남은 금선단 옷감 등이다

이 외에도 사대부가의 굴레, 의복, 주머니, 옷감 조각 등 유물 71점과 단국대학교 퇴계기념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 타 기관 유물 6점도 소장하고 있다.


덕온공주 혼례의 뚜렷한 흔적

덕온공주의 유물 가운데는 혼례 때 사용한 유물에 묵서 또는 음각으로 글이 새겨져 공주 혼례에 사용된 유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12호로 놋으로 만든 양념국자는 국자의 자루 뒷면에 “뎡유 듕추 뎌동궁 길녜시 고간이뉴사”라고 음각되어있다. 정유년(丁酉年)은 덕온공주가 혼례를 올린 해이며 저동궁(苧洞宮)은 덕온공주의 살림집을 뜻한다. 덕온공주의 혼수품에 넣어 보낸 생활용품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요민속문화재 제213호 항아당의는 덕온공주가 혼인하던 날에 항아(姮娥:궁중의 나인)가 입었던 예복이다. 안깃의 안쪽에 “뎡유 ? 츄 길례시 뎌동궁 고간 이류구” 라는 묵서가 길이 24.5㎝ 너비 1㎝의 크기로 묵서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1837년 덕온공주의 가례 때 사용된 것임이 확인된다. 『한중록閑中錄』에 글월 비자가 흑단장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말기 기록인 궁중발기 중에도 글월 비자(婢子)가 아청색의 당저고리와 치마를 입었다는 기록이 보여진다. 소장품 가운데 비녀함은 화려한 구름무늬 옷감으로 배접하여 만든 비녀 보광용 상자로 눈길을 끈다. 뚜껑 안쪽에 “뎡유계츄 관례시 됴금용?일”이 쓰여 있어 덕온공주의 관례 때 도금한 용잠을 넣어 보관하였던 함(函)임을 알 수 있다.

 

왕실 생활 문화의 흔적 엿볼 수 있어

왕실 편지글도 순원왕후 명헌왕후 명성황후의 것으로 8점이 소장되어 있다. 편지의 사연 여백에는 발수신자(發受信者)에 대한 기록을 한글로 적고 그 기록 말미에는 모두 [臣尹用求]라는 네모난 인장을 찍어 두었다. 왕실 생활 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덕온공주가의 유물 중에는 다양한 조선 왕실 유물이 함께 있다. 특히 중요한 유물에는 당대 서예가였던 윤용구와 윤백영 모녀가 유물의 유입 경위를 별로도 필사하여 함께 보존하였기에 유물의 가치도 더욱 크다. 왕후 어필은 모두 윤용구가 댓글을 기록하였고 생황용품에는 윤백영이 기록했다.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尹伯榮, 1888~1986) 여사가 집안 유물의 전래(傳來) 내력(來歷)을 한글로 기록한 유물도 있는데 말미에 ‘윤백영 서’라 쓰고 [尹伯榮章]이나 [師候堂]의 네모난 인장(印章)을 찍어 둔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마지막 공주와 그 후손의 유물을 함께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 왕실과 사대부 사이의 의생활 계보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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